남부 남자가 7월의 결혼식에 입고 가는 옷
7월 오후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어느 가든 결혼식. 기온은 섭씨 33도를 넘고 습도는 80퍼센트에 가깝다. 그런 자리에서 남부의 신랑 아버지는 거의 예외 없이 두 가지를 입고 나온다. 옅은 베이지나 푸른빛이 도는 연한 회색의 린넨 수트, 그리고 챙이 7센티미터 정도 되는 천연색 파나마 햇. 양복 깃에는 흰색이나 옅은 분홍의 부토니에르가 꽂혀 있고, 발에는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옅은 색의 옥스퍼드가 받쳐져 있다. 더위에 진 사람이 아니라 더위 안에서도 격식을 지키는 사람의 차림이다. 이 조합은 남부 남성복의 여름 표준이며,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이어져 왔다.
린넨과 파나마 햇의 조합이 단순한 패션 트렌드가 아니라 격식의 한 형태로 자리 잡은 이유는 분명하다. 덥고 습한 환경에서 정장의 격식을 유지하려면 양털 모직처럼 무거운 소재로는 한 시간을 버티기 어렵다. 그렇다고 격식을 포기하면 사회적 신호 자체가 사라진다. 남부 남자들은 양쪽을 모두 지키는 길을 오랜 시간에 걸쳐 찾아냈고, 그 결과가 린넨 수트와 파나마 햇이다. 더위에 적응한 옷차림이 아니라, 더위에도 격식을 잃지 않는 옷차림인 것이다. 결혼식이나 데뷔 무도회 같은 남부의 격식 있는 의례에서 이 차림이 한 세대를 거쳐 한 세대로 전해지는 데에는 이런 균형 감각이 깔려 있다.
린넨이라는 소재의 출발점
린넨은 아마풀의 줄기에서 얻은 섬유로 만든 천이다. 면보다 더 길고 단단한 섬유 구조 덕분에 천 안에 미세한 공기 통로가 많이 만들어져, 입었을 때 피부와 옷 사이의 열기가 빠르게 빠져나간다. 같은 무게의 면보다 통기성이 약 두 배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습기를 흡수하는 속도도 빠르다. 덥고 습한 기후에서 정장 소재로 린넨이 압도적으로 선호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린넨의 단점은 잘 구겨진다는 점이다. 한 시간만 앉아 있어도 무릎과 팔꿈치에 굵은 주름이 잡힌다. 처음 린넨 수트를 입어 본 사람들은 이 주름을 결점으로 받아들이지만, 남부 남자들은 그 주름 자체를 미덕으로 본다. 잘 다림질된 빳빳한 양복이 격식의 표시라면, 자연스럽게 구겨진 린넨 수트는 그 격식을 지키되 그 격식이 자신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여유의 표시다. 그래서 린넨 수트는 일부러 살짝 구겨진 채로 입는 것이 정석이며, 너무 칼같이 다린 린넨은 오히려 어색해 보인다.
색의 선택, 그리고 시어서커와의 차이
남부에서 입는 린넨 수트의 색은 크게 네 가지 계열로 갈린다. 가장 무난한 베이지와 옅은 카키 계열, 격식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옅은 회색, 여름의 가든 파티에 잘 어울리는 옅은 푸른색, 그리고 가장 격식이 높은 흰색 또는 크림색이다. 검은 린넨은 거의 입지 않는다. 검은색은 빛을 흡수해 더위를 가중시키고, 무엇보다 여름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
린넨과 자주 비교되는 소재가 시어서커다. 줄무늬와 살짝 주름진 표면이 특징인 면직물로, 미국 남부에서 19세기 후반부터 여름 정장에 사용되어 왔다. 시어서커는 다림질이 거의 필요 없고 빨아도 곧바로 다시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복에 가깝다. 린넨이 더 격식 있는 자리에 어울린다면, 시어서커는 점심 모임이나 야외 클럽 같은 비교적 가벼운 자리에 더 자주 등장한다. 두 소재는 같은 여름의 옷이지만 격식의 단위가 다르다. 사바나와 찰스턴의 오래된 호텔 로비를 한여름에 가 보면 두 옷이 다른 결로 한 공간에 공존하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파나마 햇의 정체
파나마 햇이라는 이름은 사실 오해에서 나왔다. 이 모자는 파나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에콰도르에서 만들어진다. 19세기 말 에콰도르 해안의 작은 마을들에서 토킬라야자라는 식물의 잎을 가늘게 쪼개 손으로 엮어 모자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 모자가 파나마 운하 건설 노동자들에게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파나마산이라는 오해가 굳어졌다. 1906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 건설 현장을 방문할 때 이 모자를 쓴 사진이 세계에 퍼지면서, 파나마 햇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굳어졌다.
좋은 파나마 햇은 손으로 엮는다. 가장 정교한 등급은 몬테크리스티 슈페리노라고 불리는데, 가는 토킬라야자 섬유를 한 모자에 1만 가닥 이상 사용해 짠다. 정교함이 어느 정도냐 하면, 모자를 손에 쥐고 둥글게 말아도 다시 펴면 원래 형태로 돌아오고, 빛에 비추어 보았을 때 표면이 일정한 격자무늬로 보일 정도다. 한 장인이 한 개의 슈페리노 모자를 만드는 데 보통 4개월에서 8개월이 걸리며, 가격은 그에 비례한다. 남부의 격식 있는 남성복 문화에서 파나마 햇을 단순한 여름 모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옷차림을 완성하는 의례적 도구로 보는 시각은 여기서 나온다.
모자의 모양과 챙의 너비
같은 파나마 햇이라도 크라운의 모양과 챙의 너비에 따라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크라운에 옆 주름이 잡힌 페도라형은 도시적이고 단정한 인상을 주고, 크라운이 평평한 플랜터스 모양은 남부 농장주의 전통적인 이미지에 가깝다. 챙이 좁으면 도시적, 챙이 넓으면 시골풍이다. 여름 결혼식이나 경마장 같은 자리에는 챙이 7센티미터 안팎의 페도라형이 가장 무난하게 어울리며, 가든 파티나 야외 점심에는 챙이 좀 더 넓은 플랜터스가 어울린다. 모자 띠의 색은 보통 검은색이나 짙은 갈색이지만, 결혼식에서는 옅은 크림색이나 부드러운 청색 같은 가벼운 색을 두르기도 한다.
모자를 다루는 예의도 따로 있다. 실내에 들어가면 모자를 벗는 것이 기본이고, 식사 자리에서 모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지 않는다. 모자를 두는 자리는 의자 옆 빈 의자, 의자 등받이, 혹은 벗어 들고 한쪽 손으로 받친 채로 인사하는 자세 정도다. 여름의 야외 행사에서 인사할 때 모자를 살짝 들어 가슴 가까이 가져가는 동작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한 시대의 격식을 잠시 빌려오는 동작에 가깝다. 이런 디테일에 관해서는 Gentleman’s Gazette의 파나마 햇 가이드가 모양별 분류와 착용법을 비교적 정성껏 정리해 두었다.
한 벌을 완성하는 작은 디테일

린넨 수트와 파나마 햇 외에도 여름 차림을 완성하는 디테일 몇 가지가 있다. 셔츠는 흰색이나 옅은 파스텔 계열의 면 셔츠가 기본이고, 풀로 빳빳하게 다림질한 칼라가 격식의 정도를 한 단계 올려 준다. 넥타이는 실크가 가장 흔하지만, 여름에는 면이나 마 소재의 가벼운 타이를 매기도 한다. 포켓 스퀘어는 흰색 린넨 손수건을 무심하게 접어 넣는 방식이 가장 단정하다.
구두와 양말의 선택
발에는 옅은 색의 가죽 구두가 어울린다. 흰색 버크 슈즈, 옅은 베이지 윙팁, 부드러운 송아지 가죽의 로퍼가 모두 가능하다. 검은 구두는 린넨 수트에 거의 신지 않는다. 양말은 옅은 색이 기본이며, 어떤 자리에서는 양말을 신지 않고 발목을 살짝 드러내는 방식도 받아들여진다. 단 격식이 높은 자리에서는 반드시 양말을 신는다.
관리법과 보관
린넨 수트를 오래 입는 비결은 의외로 단순하다. 한 시즌 동안 두세 번만 드라이클리닝을 맡기고, 나머지는 옷솔과 환기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입은 후에는 옷걸이에 걸어 통풍이 잘 되는 곳에 하룻밤 두면 땀 냄새가 빠지고, 다음 날 가볍게 다림질하면 다시 단정해진다. 너무 자주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면 린넨 특유의 결이 약해지고 광택이 죽기 때문에 오히려 수명이 짧아진다.
파나마 햇은 더 섬세하다. 비를 맞으면 형태가 변형되기 쉬워서 야외 활동 후에는 반드시 모자 거치대에 거꾸로 걸어 안쪽을 말려야 한다. 보관할 때는 모자 안쪽에 신문지를 둥글게 말아 넣어 형태를 유지하고, 통풍이 잘 되는 박스에 둔다. 시즌이 끝나면 가까운 모자 전문점에서 스팀 정형을 받으면 새 모자처럼 형태가 복원된다. 잘 관리한 슈페리노급 파나마 햇은 한 사람의 인생 내내 함께할 수 있는 옷장 품목으로 꼽힌다.
몸에 익히는 데 걸리는 시간
린넨 수트와 파나마 햇 차림이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은 양털 모직의 두툼한 수트에 익숙해서, 가벼운 린넨이 처음에는 한복처럼 헐렁하게 느껴진다. 모자를 쓰는 습관도 익혀야 한다. 모자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언제 벗어야 하는지, 인사할 때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같은 동작이 자연스러워지기까지 몇 차례의 시도가 필요하다. 남부 패션 전반의 흐름을 이해하고 나면 이 동작들이 자의적 격식이 아니라 한 지역의 사회적 약속이라는 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다림질된 린넨이 아니라 살짝 구겨진 린넨, 머리 위에 올린 직후의 빳빳한 모자가 아니라 한 시즌 정도 쓴 부드러운 모자가 더 어울린다. 격식이라는 단어가 빳빳함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옷이 바로 이 한 벌이다. 더위 안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의 차림, 그러나 그 격식이 자기를 짓누르지 않는 사람의 차림. 남부 남자들이 한 세기 넘게 다듬어 온 이 균형을 한 벌의 옷이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