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지빌, 그리고 한 작가의 13년
조지아 주의 작은 도시 밀리지빌에서 북쪽으로 차로 5분 정도를 가면 안달루시아라 불리는 농장이 나온다. 흰 페인트 칠이 된 2층 본채, 그 앞으로 길게 펼쳐진 스크린 포치, 본채 옆의 헛간과 작은 연못. 풍경 자체는 조지아 시골의 어느 농장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미국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곳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다. 플래너리 오코너가 자기 생애의 마지막 13년을 보내며 두 편의 장편소설과 서른 편이 넘는 단편을 완성한 자리, 곧 남부 고딕이라 불리는 문학적 풍경이 가장 짙게 잉태된 장소다.
그가 안달루시아로 들어온 것은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다. 1950년 25세의 오코너는 갑작스럽게 발병한 루푸스 진단을 받았고, 1951년 어머니 레지나의 보살핌을 받기 위해 사바나 시절의 도시 생활을 정리한 채 이 농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외삼촌 버나드 클라인이 가지고 있던 약 544에이커 규모의 낙농장과 목장이 어머니에게 상속되면서, 오코너는 그 본채의 2층 방 하나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64년 3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가 머문 시간이 정확히 13년이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은 이 농장을 국가 사적지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으며, 국립공원관리청 페이지의 안달루시아 농장 항목에는 본채의 위치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1층 방 하나가 만든 문학
루푸스를 앓으면서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 오코너는 2층 침실에서 1층의 작은 방으로 작업 공간을 옮겼다. 침대 옆에 책상이 놓이고, 책상 위에는 수동 타자기가 자리를 잡았다. 그가 매일 아침 미사에 다녀온 뒤 이 방에 앉아 두세 시간을 글에 집중하는 것이 13년 동안의 일과였다. 와이즈 블러드, 폭력적으로 빼앗기는 자, 좋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 솟아오르는 모든 것은 한 점에 모인다. 그가 안달루시아에서 완성한 작품 목록은 그가 짧은 생애 동안 만들어 낸 거의 모든 결과물이다.
이 방에서 글을 쓰는 동안 오코너는 창문 너머로 농장의 일상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풍경을 매일 마주했다. 어머니가 농장의 일꾼들과 거래하는 소리, 닭과 칠면조와 공작이 우는 소리, 봄에 송아지가 태어나고 가을에 건초가 말려 가는 풍경이 모두 그의 시야 안에 있었다. 그가 그려낸 농장 캐릭터들, 시골에서 자란 정직한 백인 노동자와 도시에서 흘러들어온 사기꾼, 자신의 신앙을 의심하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농부, 종교적 광기에 사로잡힌 부랑자들은 모두 그가 창밖에서 본 사람들에게서 출발해 그의 종교적 상상력을 통과해 다시 그려진 인물들이다.
공작과 그로테스크의 정서
안달루시아 농장에서 가장 자주 회자되는 풍경 하나는 공작이다. 오코너는 농장에서 약 40마리의 공작을 키웠다. 그가 어느 잡지에 쓴 글에 따르면, 공작은 아름답지만 시끄럽고 거만하며 종종 정원을 망쳐 놓는 새였다. 그가 이 새를 그토록 좋아한 이유는, 공작이 보여주는 화려함과 추함의 동시 존재가 그의 신학적 세계관과 정확히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단편 안에는 공작이 자주 등장하는데, 거의 모든 경우에 종교적 계시의 순간을 암시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화려한 꼬리를 펼치는 공작의 모습이 그의 작품에서 신의 갑작스러운 임재로 번역되는 셈이다.
그로테스크라는 단어는 오코너의 작품을 설명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가 그린 인물들은 종종 외모가 일그러져 있거나,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거나, 도덕적으로 비뚤어져 있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그로테스크는 단지 충격을 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는 한 인물의 외형적 일그러짐이 그 인물 내면의 영적 상태와 정확히 대응한다고 보았다. 일그러진 외형은 일그러진 영혼의 가시화이며, 그 영혼이 어떻게 구원에 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인물들을 가장 극단의 자리까지 몰아붙였다. 안달루시아 농장의 본채와 부속 건물이 현재 어떻게 보존되어 있는지는 조지아 칼리지의 안달루시아 소개 페이지가 운영 시간과 함께 정리해 두었다.

가톨릭,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남부
오코너를 이해할 때 빠뜨릴 수 없는 한 가지는 그가 가톨릭 신자였다는 사실이다. 미국 남부는 침례교와 감리교 같은 프로테스탄트 교파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었고, 오코너가 살았던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조지아에서 가톨릭 신자는 소수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이 다수의 프로테스탄트 이웃들 사이에서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는 경험을 글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신앙과 회의를 동시에 끌어안고 살아가는 모습은 그 자신의 매일의 풍경이었다.
그는 침례교 전도사, 떠도는 설교자, 종교적 광기에 사로잡힌 농부 같은 프로테스탄트 남부의 인물들을 깊이 있게 그렸다. 와이즈 블러드의 주인공 헤이즐 모츠가 자신의 교회를 그리스도 없는 교회라고 부르며 떠도는 모습, 폭력적으로 빼앗기는 자의 어린 예언자가 자신의 사명을 거부하다가 끝내 받아들이는 모습은 모두 남부 프로테스탄트 문화의 깊은 단면을 가톨릭의 시선으로 다시 본 결과다. 그가 묘사한 신앙은 따뜻한 위안이 아니라 폭력적인 침입에 가까웠고, 그 폭력 안에서 구원이 일어난다는 것이 그의 작가적 신념이었다.
편지로 남은 사고의 흔적
오코너는 작품 외에도 방대한 양의 편지를 남겼다. 친구와 동료 작가, 비평가들에게 보낸 편지가 그의 사후에 묶여 출간된 책이 한 사람의 습관이라는 책이다. 이 편지들은 그가 자기 작품의 의도, 신학적 사유, 농장 생활의 세부, 다른 작가들에 대한 평가를 솔직하게 적은 일종의 사유 일기다. 그가 자신의 작품이 단순한 충격 장치로 읽히는 것을 얼마나 견디기 어려워했는지, 그리고 그 작품들이 가톨릭 신앙의 틀 안에서 어떻게 읽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가 편지 안에 분명히 드러난다.
이 서간집의 또 다른 매력은 그의 유머다. 글에서는 차갑고 단호한 문장을 구사하던 그가 편지에서는 종종 자신을 조롱하고, 농장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어이없는 사건들을 농담조로 옮긴다. 공작이 자기 정원을 망쳤다는 불평, 어머니의 손님이 너무 오래 머물러서 글을 쓸 수 없다는 푸념, 어떤 비평가의 글을 읽고 답답해서 잠이 안 온다는 한밤의 토로 같은 것들이 편지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작품 안의 그와 편지 안의 그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그의 단편을 읽는 방식도 한층 가벼워진다.
안달루시아를 방문할 때
안달루시아 농장은 오코너의 모교인 조지아 칼리지 앤드 스테이트 유니버시티가 2017년부터 관리하고 있다. 학교는 본채의 1층 방을 1950년대와 60년대의 모습으로 복원했고, 2023년에는 농장 입구 근처에 안내 센터를 새로 지어 그의 생애와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일반 방문객은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가이드 투어로 본채를 둘러볼 수 있으며, 학생들이 직접 안내를 맡는다.
방문해 보면 그가 매일 글을 쓴 1층 방의 크기에 놀라게 된다. 침대와 책상, 책장 한 칸만으로 거의 가득 차는 작은 공간이다. 그 좁은 방에서 그는 미국 문학사를 다시 쓰게 만든 단편들을 한 편씩 완성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풀밭, 본채 옆 헛간, 멀리 보이는 연못의 풍경이 그의 단편 안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작품과 장소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오코너는 자신이 사는 농장의 풍경을 거의 그대로 빌려와 그 위에 종교적 우화를 덧씌웠다. 따라서 그의 작품 안의 농장은 진짜 안달루시아이고, 그 안의 인물들은 그가 매일 마주친 이웃들의 변형이다. 한 작가의 거주지가 작품의 무대와 거의 일치하는 사례는 많지 않은데, 오코너의 경우 그 일치도가 특별히 높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안달루시아를 방문하면, 글이 풍경이 되고 풍경이 다시 글이 되는 순환을 직접 경험하게 된다. 남부 문학의 큰 흐름 안에서 그가 차지하는 자리를 따로 살펴보면 그 순환의 의미가 한층 분명해진다.
안달루시아의 스크린 포치에 앉아 있으면 오코너가 매일 보았던 풍경이 거의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다. 농장의 일꾼이 트랙터를 움직이고, 멀리서 공작이 울고, 풀밭이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1950년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작가가 자신의 모든 작품을 한 자리에서 길러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 풍경 안에 잠시 앉아 있어 보면 된다. 짧은 생애의 13년이 어떻게 한 시대의 문학을 만들 수 있었는지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천천히 설명되기 시작한다.